아이웨이웨이艾未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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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웨이웨이艾未未.
중국 미술가이며 정치 활동가로, 건축과 큐레이팅, 사진, 영화는 물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비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정치 활동가로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정부의 부패와 은폐 사실도 조사했으며, 특히 2008년 쓰촨성 지진이 일어났을 때 마치 두부가 뭉개지듯 학교 건물들이 붕괴되면서 드러난 쓰촨성 학교 부패 사건을 파헤쳤다. 2011년 4월 3일에 홍콩으로 출국 중 베이징 공항에서 체포되어 어떤 공식적 기소 절차도 없이 두 달 넘게 구금되었다. 당국자들은 우회적으로 (탈세) 혐의가 있다는 말만 했다.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은 옛것과 새것, 서양과 동양, 진지함과 불경함을 대담하게 혼합한다. 레디메이드 제품으로 새로운 예술 언어를 만드는가 하면, 신석기 시대 도기, 14세기의 문, 17세기의 절 기둥을 이용하여 놀랍고도 충격적인 조각품을 만들기도 한다. 권위와 권력에 대한 자신의 조롱을 드러내기 위해 베이징의 톈안먼, 베를린의 독일의회, 워싱턴의 백악관, 파리의 에펠 탑을 겨냥한 손가락질을 찍기도 했다(「원근법 연구」, 1993~2005). 또 자신이 살고 있는 베이징의 일상과 혼란함을 150시간의 비디오에 담아(「베이징 2003」, 2003) 앤디 워홀의 저 유명한 8시간짜리 「제국 Empire」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아이웨이웨이는 중국 서쪽의 고비사막 끝에서 자랐다. 1970년대 후반, 베이징으로 이주하여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로 알려진, 약간 느슨한 그룹에서 활동했다. 1981년 이들의 전시에 보복을 가한 정부의 탄압을 피해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수학했고, 뉴욕에서 14년을 지내다가 부친의 병환으로 1993년 중국으로 돌아온다. 베이징에 자리를 잡은 아이웨이웨이는 당시 태동하고 있던 중국 최초의 전위미술의 구심점이 되었다. 이후 자신의 예술을 본격적으로 추구하는 동시에 놀랍고도 유명한 건축가로서 부상하게 된다 (베이징과 주변 도시의 수많은 건축 의뢰와 더불어 스위스 건축가들인 헤르초크 & 드 뫼롱에게 유명한 베이징 국립 스타디움의 구상안을 제공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50여개가 넘는 건축 프로젝트를 실현, 세계의 그 어느 건축가보다 많은 작업을 구현하였다.

아이웨이웨이를 진정한 21세기의 예술가로 만드는 것은 바로 그의 이러한 다양한 역할이다. 미술가, 디자이너, 건축가일 뿐만 아니라 큐레이터, 출판인, 블로거, 또한 베이징의 세대를 초월한 모든 예술가들의 나침반이기도 하다. 그의 광대한 공적 페르소나는 그의 예술의 본질이기도 하다. 거침없는 견해 표명으로 중국 정부로부터 원치 않는 관심을 받았지만 중국 국경을 넘어서는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미 그의 작품은 유수한 세계적인 전시회들에서 점점 더 많이 전시되고 있다. 제12회 도큐멘타(2007), 제5회 아시아 태평양 트리엔날레(2007), 제15회 시드니 비엔날레(2006) 등 진정 놀라운 새로운 예술의 모습을 내면화한 작품을 세계에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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