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 일기

앤디 워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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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정보

작가/옮긴이

앤디 워홀Andy Warhol / 홍예빈

출간일

2009년 8월 10일

사이즈/페이지

207*234 / 연장정 / 976면

ISBN

978-89-90641-38-0 03600

분야/언어권

예술,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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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이 글로 그려 낸 특별한 초상화!
1970~1980년대 시대사와 예술사에 대한 빼어난 기록

팝 아트 운동의 선구자로, 누구보다도 현대 예술에 많은 영향을 남긴 앤디 워홀의  『앤디 워홀 일기』가 미메시스에서 출간되었다. 앤디 워홀은 매일 아침 9시 반, 이 책의 엮은이 팻 해켓에게 전날의 일과를 전화로 불러 주었고, 팻 해캣은 택시비와 식대를 포함한 시시콜콜한 내용을 꼼꼼히 받아 적었다. 이런 작업은 1976년 11월 24일 수요일부터 워홀이 병원에 실려 가기 직전인 1987년 2월 17일 화요일(2월 22일 일요일 사망)까지 계속되었다. 팻 해캣은 2만 장의 일기 가운데 앤디 워홀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일기들만 골라 이 책을 엮었다.
앤디 워홀 일기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 일기는 인간 앤디 워홀과 그의 삶을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 일기는 팝 아트의 기록이자, 당시 뉴욕에서 예술과 대중문화와 사회를 주도했던 사람들 모두의 일기이기도 하다. 출간 당시인 1989년, 이 두꺼운 책이 뉴욕 타임스 북리뷰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네 달간 올라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어판에는 특별히 원서에 없는 <앤디 워홀의 연보>를 역자와 미메시스 편집부가 일반인들이 쉽게 찾기 힘든 각종 자료를 신중히 검토한 뒤 수록했다. 재작년 앤디 워홀 사망 20주기를 맞이해 한국에서는 유례없는 대규모 전시회가 개최되었고, TV 광고에 워홀의 이미지가 삽입되는 등 한국에서의 앤디 워홀의 인지도나 인기는 그가 작명한 <슈퍼스타>와 같은 위치를 누려 왔다. 그래서 이러한 앤디 워홀의 인지도 덕에 지금까지 독자들은 팝 아트, 앤디 워홀 혹은 워홀의 작품을 비롯한 예술품 경매에 대한 표면적인 설명을 담고 있는 단행본은 시중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워홀의 삶의 면면을 상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은 지금껏 없었다. 『앤디 워홀 일기』는 국내 발행 기준으로 앤디 워홀 관련 서적으로서는 가장 방대한 양을 자랑하며, 뉴욕의 문화와 팝아트의 근본을 파악할 수 있는 1차적 텍스트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자료로서의 가치도 충분히 지닌다.
원고지 125매 분량의 상세한 연보 외에도 한국어판에는 일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고지 220매 분량의 인명사전을 만들었다. 워홀의 주변 인물 중 자주 등장하는 인물을 뽑아 귀여운 북마크도 함께 제작하였다. 일기 자체만 무려 6907매(소설 7권 분량)이며, 정확히 789매에 달하는 인덱스의 항목 수는 무려 4000개가 넘을 정도로 그 양이 상상을 초월한다(John 혹은 Jon으로 쓰는 존이라는 사람의 수가 80명이나 된다). 이 모든 작업은 번역을 시작한 후로부터 책이 나오기까지 6년 5개월이 걸렸다.
워홀의 말을 일일이 기록했던 『앤디 워홀 일기』의 편집자 팻 해켓의 머리말(21면 참조)에도 언급이 되어 있지만, 앤디 워홀 특유의 기괴한 표현이나 농담, 과장된 숫자, 그리고 연인원 3000명가량의 등장인물을 차치하고라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서로 다른 와 는 번역을 하는 데 큰 애로 사항이었다고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는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워홀, 라우셴버그, 폴록, 바스키아, 야스퍼 존스, 크리스토퍼 마코스 등 당대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이야기
비타민 B를 엄청 먹는 로니 커트론을 깨워 사무실로 올 때까지 오줌을 참으라고 하면서 즐거이 「오줌Piss」 작품 작업을 하는 일기(1977년 6월 28일 화요일)가 눈길을 끈다. 라우셴버그, 야스퍼 존스, 잭슨 폴록, 장 미셸 바스키아 등 동시대 예술가들과의 교류, 그들 작품에 대한 감상, 표면에 드러내지는 않지만 묘한 경쟁심을 읽을 수 있는 일기도 더러 있다. 어떤 것은 더 받고 어떤 것은 덜 받고 팔리는 예술품의 경매 현장, 위작 문제(1978년 5월 6일 토요일) 등도 독자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길거리에서 티셔츠에 그림을 그리던 애송이 장 미셸 바스키아에게 10달러를 빌려 주고 못 받은 대목(1982년 10월 4일)에서는 코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작업과 작업실도 공유했던 워홀이, 쇼핑백처럼 아무데나 코를 푸는 괴짜 바스키아를 이상하게 여기는 일기(1983년 10월 5일 수요일)를 보면 또 웃음이 나온다.

 

워홀의 잡지 『인터뷰』 내용을 타이핑하던 도리아 레이건은 대통령의 며느리
1950년대 이후로 투표를 전혀 하지 않았을 정도로 정치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워홀이지만, 그는 백악관에 초대된 적이 있을 정도로 정치계 사람들과의 교류도 잦았다. 몬톡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재키 오나시스와 그녀의 여동생 리 래지윌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며, 『인터뷰』에서 일하고 싶다며 무작정 찾아왔던 도리아는 로널드 레이건의 아들 론 레이건의 부인이었다. 매일 대여섯 명의 재무성 사람들의 경호를 받으며 팩토리에 나타난 도리아는 레이건 대통령 부부의 허락 없이 결혼한 상태였다고 일기에 워홀은 전한다. 타이핑과 선 그리기 등의 잡일을 하면서 『인터뷰』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한 도리아는 사무실에서 시어머니 낸시 레이건을 인터뷰했는데 그 사실을 언론에서 떠들까 봐 걱정하기도 한다(1981년 10월 14일~29일). 또한 일기에는 앤디 워홀과 이란 대사와의 교류, 모나코의 공주 그레이스와 캐롤라인과도 친분 관계 같은 흥미로운 사실도 여럿 언급되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로 <앤디 워홀의 슈퍼스타>
앤디 워홀은 측근들을 주위에 풀어놓는 사람이었다고 머리말은 전한다. 또한 1960년대에 그가 만들었던 언더그라운드 영화에 나온 사람들을 비롯해 그와 절친한 사람들은 전부 <앤디 워홀의 슈퍼스타>로 묘사되었다. 앤디 워홀의 잡다한 분야에 대한 관심은 영화 제작과,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앨범과 재킷 작업, 그리고 1969년 잡지 『인터뷰』의 창간으로 이어졌다. 『인터뷰』의 발행 부수는 언제나 10만 부를 밑돌았지만 분량은 1976년 당시 93페이지에서 1979년에는 400페이지로 늘어났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 앤디 워홀은 한 번도 인쇄 매체에 노출된 적 없는 젊은 미남 미녀들의 사진과 인터뷰를 실었고, 이렇게 『인터뷰』는 당시 가장 매혹적인 잡지의 하나가 되었다. 워홀은 일기에 『인터뷰』에 들어가는 스무 살이 넘은 사람들의 사진은 전부 수정 작업을 거친다고 고백하기도 한다(머리말 17면 참조).
코폴라, 스티븐 스필버그, 폴 모리세이 등 영화 제작자 및 감독들뿐 아니라 작품의 소재로 쓰였던 매릴린 먼로, 조앤 콜린스, 실베스터 스탤론, 아널드 슈워제네거, 잭 니컬슨, 엘리자베스 테일러, 존 트래볼타 등의 무비 스타들, 존 레논, 프린스, 카스,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의 뮤직 스타들, 마지막으로 트루먼 커포티, 테니시 윌리엄스 등의 작가들과 같이, 당시에 유명세를 떨쳤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과의 재미있는 일화들이 일기에 담겨 있다.

 

늘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 앤디 워홀의 마지막 말도 <고마워요>였다
앤디 워홀은 예의 바르고 겸손한 사람이었다(머리말 13면 참조). 누군가에게 일을 <강요>하는 적도 없고, 모두를 존중하며 누구도 천대하지 않았다. 자신을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해했고, 그들이 맡은 일을 잘해낼 때도 감사해했고, 사소한 일에는 특별히 더 감사해했다. 죽기 전에 팻 해켓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도 <고마워요>였다고 일기는 전한다. 그는 캐서린이 고양이 지미가 카펫에 오줌을 쌀까 봐 고양이를 안락사 시키려 하거나(1983년 9월 22일) 브리지드가 병든 고양이 빌리를 없애 버렸을 때 잔인하고 냉혹하다고 일기에 언급했다(1981년 5월 5일). 바쁜 틈에도 팩토리 직원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고(1982년 22월 26일), 택시를 타고 어딘가를 갈 때는 언제나 누군가를 태웠다가 내려 주거나 어디에선가 태워 갔다.
초상화 작업은 앤디 워홀의 연소득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 예술계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할 때조차 그는 그 작업을 즐겼다(머리말 17면 참조). 매릴린 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비스 프레슬리, 말런 브랜도 같은 연예인들의 초상화를 그렸던 1960년대 이후, 그는 자연스럽게 연예인이 아닌 사람들의 초상화도 그리기 시작했다. 어떤 면에서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대목이다.
일기에는 앤디 워홀의 초상화 작업 과정에 대한 내용은 상세히 적혀 있다. 초상화 작업은 (오로지) 폴라로이드 빅 샷 카메라로 예순 장의 사진을 찍고 그 후 잘 나온 네 장을 골라 실크 스크린 프린터에게 맡겼다. 알렉스 하인리히(나중에는 루퍼트 스미스)가 포지티브 이미지를 만들어 주면 앤디 워홀은 그중 하나의 이미지를 선택해 최대한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자르고 손질했다. 자신의 얼굴을 그리듯이 정성스럽게 제작한 이미지는 다시 아세테이트 필름에 네댓 배 확대한 다음 다시 실크 스크린으로 제작했다(머리말 18면).

 

파티, 그리고 <나>와 <우리>, 책과 영화, 음악, 연극
『앤디 워홀 일기』에서 특이하면서도 재미있는 내용을 꼽으라면 밤새 벌어지는 화려한 뉴욕의 파티 라이프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앤디 워홀에게 있어서 파티는 그저 놀고먹기 위한 파티가 아니라 일종의 일과 같은 것이었다. 하룻밤에 파티 열여덟 군데를 도는 날도 있었다고 일기는 전한다. 파티를 즐겼던 워홀은 그만의 속어를 일기에 쓰기도 했는데 밖에 나가기 전 세수를 하고 은빛 머리를 단정히 하고 옷을 갈아입는 것을 뜻하는 <풀칠>이 바로 그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파티장은 사람들과 연극, 영화, 그리고 책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그들에게서 초상화 작업을 의뢰받고, TV 드라마 <사랑의 유람선> 출연 의뢰를 받고, 가십, 패션, 문화, 그리고 예술에 대해 떠들던 공간이었다.

 

일기 읽기는 단순한 읽기가 아니라 일종의 특별한 <체험>
역자는 『앤디 워홀 일기』를 다른 책들처럼 평범하게 읽지 말고 앤디 워홀과 <통화>를 하는 기분으로 접했으면 한다고 얘기한다. 침대에 누워 애인과 통화를 하듯이 수화기를 붙들고 앤디 워홀의 하루 일과를 느긋하게 들으라고 역자는 제안한다.
한편, 원서의 편집자 팻 해킷은 일기를 넘기며 만나게 되는 여러 인물들의 정확한 특징은 독자의 노력의 과정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특정 인물을 이해하기 위한 이러한 번거로운 <작업>도 일기 읽기의 특별한 경험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앤디 워홀 일기』는 앤디 워홀의 절친한 친구가 되거나 독자들이 직접 앤디 워홀이 되어 그의 혼란스러운 삶을 느껴보는 재미있는 <체험>이 될 것이다.

 

지나칠 뻔했던 2003년 3월 2일의 약속을 지켜 내기 위해 보낸 6년의 세월
역자가 『앤디 워홀 일기』의 번역을 시작하게 된 동기도 흥미롭다. 역자가 일기의 번역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이 책을 통해 앤디 워홀과 팝 아트, 그리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 문화의 뿌리를 파헤쳐 보려는 시도에도 있었지만, 이 책의 번역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열린책들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는 아버지와의 약속에서 출발한다. 아들은 『앤디 워홀 일기』의 번역을 하고 아버지는 앤디 워홀보다 더 세세한 일기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출판계의 한석봉과 어머니>라고 하면 맞는 표현일까? 결국 아버지는 2009년 3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라는 책을 펴냈고, 아들은 2009년 8월, 앤디 워홀의 이야기를 담은 『앤디 워홀 일기』를 번역하여 끊임없이 교열, 퇴고를 거듭하여 책을 완성했다. 두 일기는 <완성된 형태로서 공개되는> 부자간 약속의 산물이다.
인덱스를 제외한 『앤디 워홀 일기』 원서의 순수한 일기 분량은 정확히 807쪽이었는데 역자는 정확히 하루에 한 쪽씩 번역을 해서 2005년 5월에 번역을 마치려고 했다. 하지만 번역을 하는 도중에도 수차례의 수정을 거쳐 결국 2007년 겨울에 번역을 마칠 수 있었고, 그 후에도 1년 6개월에 걸친 기나긴 편집 과정을 거쳐 『앤디 워홀 일기』가 마침내 국내에서 빛을 볼 수 있었다. 역자는 이를 두고 6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자기를 괴롭혔던 <앤디 워홀의 악령>에서 벗어나 너무나 속이 후련하기도 하지만 왠지 아쉽다며 시원섭섭하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라며 옮긴이의 말에서 회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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