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웨이웨이

아이웨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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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정보

작가/옮긴이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 / 송태욱

출간일

2011년 9월 25일

사이즈/페이지

125*205 / 반양장 / 288면

ISBN

978-89-90641-60-1 03600

분야/언어권

예술,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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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아이웨이웨이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입문서 !

“나는 예술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기본 틀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내 작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죠.”
― 아이웨이웨이, <해바라기 씨> 인터뷰 중, 2011년 4월
사실 우리가 현실의 일부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죠. 우리는 생산적인 현실이에요. 우리는 현실이지만, 현실의 일부라는 것은 우리가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는 말이죠.”
― 아이웨이웨이, 2006년 9월 (본문 29쪽)
“그는 단순히 현실을 재현하지 않고 현실을 창출한다.
아이웨이웨이는 우리를 이 새로운 영역으로 인도하는 가장 훌륭한 길잡이 중의 한 명이다.
수년 간의 모든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는 예술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그의 전체론적 접근 방식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회적 조각social sculpture>이라는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의 접근 방식에 비견할 만하다.”
―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2011년 5월 (본문 13쪽)
■ 아이웨이웨이 작품과 활동

아이웨이웨이는 오늘날 가장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개념 미술가이다. 사진가, 큐레이터, 블로거, 중국의 건축가이기도 한 그는 일명 <새 둥지(鳥巢), 냐오차오>로 불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스타디움을 설계한 이후 그 명성이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중국 전위미술의 <대부>로 평가 받는 아이웨이웨이는 현재 중국 문화계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집안은 그의 경력만큼 전설적이다. 부친 아이칭(艾靑)은 중국 현대시의 거장으로, 문화혁명 중 고발을 당해 중국 서부의 신장성 고비사막으로 유배를 당해 18년간 강제노동을 했다.

1976년 가족이 베이징으로 돌아왔고, 1978년 베이징 영화 학원에 입학, 영화감독 천카이거(陈凯歌, 1952~), 장이머우(張藝謀, 1951~)와 함께 수학했다. 아이웨이웨이는 당시 중국 최초의 전위미술의 기둥이었다. 종종 <중국의 앤디 워홀>로 불리는 그는 1970년대 후반에 다양한 미술 및 문학 그룹에 참여했다(스타즈, 今日). 이후 이들 그룹은 정부의 탄압을 받는다.
1981년 정부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거처를 옮겨, 펜실베니아, 버클리,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수학했다. 1993년 중국으로 돌아온 뒤 1994년 독립 큐레이터이자 평론가인 펑보이(馮博一)와 함께 중국 현대 미술가들과 그들의 정치적 이념을 옹호한 『검은 표지의 책(黑皮書)』를 출간했다. 이어 1995년 『흰 표지의 책(白皮書)』, 1997년 『회색 표지의 책(灰皮書)』을 출간한다. 이 책은 중국 미술계의 컬트가 되었다. 1997년부터 큐레이터로도 활동, 전시회를 개최하였고, 중국의 현대미술과 신세대 예술가들을 위한 대안 미술 공간인CAAW(藝術文件倉庫, China Art Archives and Warehouse)를 세웠다.

1999년 베이징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짓고, 디자인 회사 (發 課文化發展公司)를 설립했다. 2000년 펑보이와 함께 상하이에 <꺼져! Fuck Off>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독립 비엔날레를 개최하여 중국 현대 미술가들과 자신의 작품을 전시했다. 2003년 세계적인 스위스 건축가 헤르초크 & 드 뫼롱과 함께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2007년 <중국 현대 미술 재단The Modern Chinese Art Foundation>을 설립한다. 2008년에 그의 전작품에 대해 중국 현대 미술상이 수여된다.

정치활동가로서 아이웨이웨이는 쓰촨성 지진으로 인한 희생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투쟁에 전력을 다했다. 자신의 블로그와 트위터를 이용하여 자유, 거짓말, 기억 등을 주제로 현실 정치에 깊이 개입하였다. 인터넷에서 그의 별명은 그의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미래를 사랑하는 자)이다.

아이웨이웨이의 작업은 도발적이며, 짓궂고, 파괴적이면서 심오하다. 중국의 전통문화와 서구의 대중문화에서 종종 작품의 형태를 차용하는 그는 본래의 형태에 담겨 있던 의미를 환기하는 동시에 이를 부정하고, 아울러 그것을 새롭게 현재의 맥락 속에 놓아 전혀 다른 화두를 던지게 하는 시각 언어를 웅변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이웨이웨이의 주변은 늘 예술가들과 다양한 인사들로 가득하다. 최근 베이징 올림픽 스타디움 설계와 네이멍구 오르도스에서 진행 중인 건축 프로젝트로 인해 중국 예술계에서의 위상에서 비견할 자가 없다고 할 수 있다.

 

■ 주요 전시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은 세계적으로 유수한 전시회에 출품되었다. 제29회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2010),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2010, 2009, 2008, 2004),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2009, <미안해요 So Sorry>),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2008), 영국 리버풀 비엔날레 인터내셔널 08(2008), 독일 카셀 Documenta(2007, 명청 시대 1,001개의 의자와 문을 이용한 설치 작품과 1,001명의 중국인을 초청), 오스트레일리아 제5회 아시아 태평양 트리엔날레 현대미술전(2006), 프랑스 제1회 몽펠리에 비엔날레 중국 현대미술전(2005), 도쿄 하라 현대미술관, 제1~2회 광저우 트리엔날레(2002, 2005), 아울러 뉴욕과 전 세계의 다양한 갤러리들에서 작품이 전시되었다.

개인전은 독일 뒤스부르크의 스티프퉁 DKM(2010), 포틀랜드 현대 공예 박물관(2010), 미국 글렌사이드의 아르카디아 대학 미술관(2010), 도쿄 모리 미술관(2009), 베이징 삼영당 사진예술센터(Three Shadows Photography Art Center, 2009), 시드니 캠벨타운 아츠 센터의 셔먼 컨템포러리 아트 파운데이션(2008), 흐로닝언 미술관(2008)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대구 문화 예술관(1998), 부산 비엔날레(2006), 서울 현대 미술관(2008)에서 전시가 있었으며, 2011년 건축가 승효상과 함께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공동 총감독으로 임명되었으나 6월 말 석방 이후 베이징을 벗어날 수 없는 상태이다.

 

■ 명예
– 2010년 3월, 벨기에 겐트 대학교 정치학 및 사회과학부에서 명예 박사 학위 수여(Honorary Doctorate Degree).
– 2010년 9월 독일 카셀에서 카셀 시민상인 <이성의 프리즘상Das Glas der Vernunft> 수상.
– 2010년 세계적 미술 잡지 「아트리뷰ArtReview」 선정, 현대 미술을 움직이는 파워 100인 중 1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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