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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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정보

작가/옮긴이

다니엘 지라르댕, 크리스티앙 피르케르 / 정진국

출간일

2011년 4월 10일

사이즈/페이지

220*280 / 견장정 / 320면

ISBN

978-89-90641-53-3 03660

분야/언어권

예술, 사진, 프랑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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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법적, 윤리적 문제를 정면에서 포착하다 
 사진은 세상에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논쟁의 중심에 놓였다. 사진이 예술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서 시작해 저작권과 초상권, 내용 조작, 아동 나체, 포르노, 사진가의 윤리 문제 등이 끊임없이 제기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논쟁 중이다. 이 책에 실린 73장의 사진은 사진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작품을 고른 것이다. 오늘날의 잣대로 보아도 전시나 출간이 불투명할 정도로 난감한 사진들이 있는가 하면, 익히 보아 온, 그래서 논쟁이 될 만한 어떤 이유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도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 놓인 논쟁은 더욱 뜨겁고 충격적이다. 어쩌면 이 책 출간 자체가 또 하나의 논쟁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논쟁을 우회하거나, 문제시될 만한 것들을 아예 삭제하는 방법을 택하지는 않았다. 누구나 사진을 생산할 수 있고, 누구나 사진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오늘날, 이런 논쟁은 오히려 정면에서 포착해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옳다. 사진은 더 이상 사적인 영역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성격까지 그 안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찍을 권리 대 찍히지 않을 권리
초창기에 사진은 독립적인 예술 분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현재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고 사진이 예술이라는 점에 대해 더 이상의 논쟁은 없는 듯하다. 이는 일찍이 마예르와 피에르송 같은 사진가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862년 이 두 사람의 법정 투쟁 결과 사진은 <합법적으로> 예술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28쪽) 물론 사진이 예술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기까지는 그 후에도 많은 법정 다툼과 시간이 필요했다.
사진의 초창기 논쟁이 위와 같았다면 보다 더 심각한 법정 투쟁은 사진의 기법이 발달하면서 다양하게 터져 나왔다. 그 가운데 셔터를 누를 때마다 반드시 발생하게 되는 문제가 있으니 바로 저작권과 초상권 사이의 대립이다. 특히 보도 사진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 민감하다. 세계 청년의 날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는 세 여성을 찍은 아바스의 사진(260쪽)과 지하철에서 승객을 몰래 촬영한 뤼크 들라예의 사진(280쪽)이 대표적이다. 두 경우 모두 허락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을 찍었고 나중에 언론이나 작품집을 통해 사진이 공개되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진이 찍힌 당사자들은 즉시 반발했고 작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른바 초상권과 저작권 사이의 법정 투쟁이었다. 작가들은 보도 사진이나 스냅 사진의 성격상 모든 사람에게 동의를 구하고 사진을 찍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항변했고, 사진이 찍힌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다. 그러나 개인의 권리가 더 중시되는 시대나 사회에서는 법이 어느 쪽을 손을 들어줄지 확신할 수 없다. 저자는 이런 법정 소송이 증가하면서 <사진가들이 법정에 불려가기 쉬울 만한 촬영은 주저하면서 결국 자기 검열을 하고야 만다>(263쪽)고 우려를 표한다. <원래의 맥락에서 벗어난 그것과 무관하게 어떤 개인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사생활 존중과 또 표현의 자유에서 균형을 취하기란 여전히 까다로운 문제다>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누군가로부터 사진이 찍히고 그것이 나중에 설사 훌륭한 작품집에 실려 출간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개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은 맥락을 중시했다. <뤼크 들라예의 방법은 독창적이며, 인간 행동에 관한 예술적, 사회학적 증언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 작품은 초상을 《몰래 훔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고. <사법의 정의에서 사진의 진실성은, 추잡한 것이 아닌 한 자신이 최고로 멋진 순간에 보여지기를 바라는 개인의 희망보다 우세하다>고 저자는 말한다.(283쪽)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가?
 극도의 사실성이라는 특성 덕분에 사진은 다른 예술 분야와 비견되는 특수한 지위를 부여받는 경우가 많다. 곧, 사진은 진실이었다. 백 마디의 말보다 사진 한 장의 위력이 더 강하고 설득력이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1920년에 프랜시스 그리피스라는 열한 살짜리 소녀가 찍은 사진에는 놀랍게도 숲속의 요정이 등장한다.(66쪽) 지금은 한눈에 봐도 조악한 합성 사진처럼 보이지만 당시 이 사진은 영국을 들끓게 했다. 셜록 홈스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 이 사진을 접하고 열광한 나머지 과학적으로 이 사진의 진실을 밝히려고까지 했다. 먼 훗날 프랜시스의 조카가 사진이 조작되었음을 밝혔지만 프랜시스는 여전히 이를 부인하고 있다.
전설적인 종군 사진 기자인 로버트 카파가 찍은 공화파 병사의 죽음이라는 사진은 사진의 진실성을 놓고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88쪽) 병사가 총을 맞고 쓰러지는 그 찰나의 시간을 어떻게 포착한 걸까? 언덕을 내려오는 병사가 총을 맞았다고 어떻게 뒤로 자빠질 수가 있을까? 병사의 옷은 왜 이렇게 깨끗한 걸까? 사진이 연출되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여러 전문가가 나서서 상반된 논지를 펼쳤지만 완벽한 확증은 없다.
1969년에 나사에서 찍은 달 탐사 사진도 논쟁의 도마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여러 이유를 들어 이 사진이 연출되었다고 확신했다. 소련과의 달 탐사 경쟁에 안달이 난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시대의 사기극을 펼쳤다는 것이다.(164쪽)
1989년 로버트 마스가 찍은 루마니아의 인종 학살 참상은 사진의 진실이란 무엇인지 새삼 경계하게 만드는 사진이다.(236쪽) 한 남자가 시체 더미 위에서 울고 있다. 싸늘히 식은 갓난아이의 모습도 보인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문맥상 학살의 현장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잔혹한 루마니아 독재 정부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 시신들은 공동묘지에서 파낸 것이고, 아이는 며칠 전 식중독으로 돌연사 했을 뿐이다. 남자는 아이의 아버지도 아니었다. 독재 정권이 포악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봉기 주도자들이 연출한 현장을 사진 기자들이 아무 의심 없이 찍고 배포한 것이다. 거짓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타고 이렇게 진실화한다.

 

카메라를 집어 던지고 소녀를 구하라?
사진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사진이 있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굶어 죽어 가는 소녀와, 그 뒤에서 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독수리를 찍은 케빈 카터의 사진이다.(248쪽) 이 사진으로 케빈 카터는 퓰리처상을 거머쥐었지만, 수상 두 달 만에 자살했다. 사진가의 <윤리> 문제가 논쟁의 초점이 되었다. 독수리를 내쫓고 소녀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진가를 몰아세우는 현실의 독수리들이 나타난 것이다. 과연 저와 같은 순간을 맞닥뜨린 사진가의 윤리적 자세란 무엇인가? 카메라를 독수리를 향해 집어 던져야 했을까? 케빈 카터의 죽음은 관찰하고 전달하는 데 뛰어들면서도 그와 동시에 바로 그런 역할 때문에 비난받는 보도 사진가의 역설을 증언한다.
비슷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사진 한 장이 더 있다. 1985년에 콜롬비아에서 프랑크 푸르니에가 찍은 소녀의 사진이다.(220쪽) 콜롬비아에서 화산이 폭발했고 소녀는 화산이 토해 놓은 오물 사이에 갇혀 죽어 가고 있었다. 대자연의 재앙 앞에서 사진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록을 남기는 것뿐이었다. 많은 구조 대원이 소녀를 구하려고 노력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푸르니에는 이 사진으로 세계 보도 사진상을 수상했지만, 그의 심정은 참담했다. <아침 6시 30분에 소녀를 발견했을 때, 이미 콜롬비아 텔레비전에서 그 애를 촬영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웃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해보려 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힘을 써보거나 했지만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었다.>(222쪽) 사진 작가의 말이다. 수많은 구조 대원이 이미 노력해 보았지만,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죽어 가는 소녀의 모습을 생중계하듯 찍어야만 하는 사진가의 윤리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푸르니에는 그 상황에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지만, 그런 역겨움을 덜려고 자기 검열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고난에 빠진 소녀와 마주쳤을 때, 나는 생명과 용기에 대한 커다란 경외심을 느꼈다. 이 사진을 외면할 이유야 찾기 쉬울 것이다. 어쩌면 이 사진은 죄를 덜어 주기도 하겠지만 다시금 무력감을 확인해 주기나 할 것이다.>(223쪽)

 

아동 나체, 포르노, 신성 모독, 그 밖의 모든 터부에 초점을 맞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은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그가 찍은 사진들이 문제가 되었다.(32쪽) 캐럴은 어린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세간의 호기심을 끌었다. 그가 찍은 헐렁한 옷차림의 소녀 사진은 그의 도덕성에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독신에 수줍음을 많이 타며 간질을 앓고 있었고 더군다나 소녀에 대한 노골적인 애정을 감출 수 없었던 캐럴이 찍은 사진은 이런저런 소문에 휘둘리다가 사라졌다. 이후 캐럴은 사진을 그만두었다.
아동 사진은 조심스럽다. 아동 나체 사진은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은 금기다. 과연 그럴까? 1970년, 사진가 이오네스코는 딸의 나체 사진을 찍었다.(168쪽) 화장을 하고 속옷 차림에 패물을 착용한 상태였다. 소녀의 포즈와 시선은 도발적이다. <이오네스코는 자기 딸을 어린 매춘부로 촬영했다.> 예상대로 당시 평론가들의 반응은 거칠었다. 그러나 사진가의 입장은 단호했다. <내가 그 애를 촬영한 동기는 순수하다. 그 애는 현대적 천사의 화신이었다. 당시는 시적인 자유로 충만하던 시절이다. 그때의 이미지도 같은 방향으로 흘렀다. 타인의 시선만이 문제였다.>(170쪽)
소녀 시절 브룩 쉴즈의 나체를 찍은 사진에 대한 법원의 평가가 흥미롭다.(195쪽) <이 사진들이 성적으로 암시가 풍부하지 않으며, 도발적이거나 포르노그래피에 속하지도 않는다, 성적인 난잡함도 암시하지 않는다, 욕조에서 순진한 포즈를 취한 조숙한 어린이의 사진일 뿐이다.> 여배우의 사생활을 침해한 것이자 이 사진의 발행 때문에 고통과 궁지에 처했다는 브룩 쉴즈의 항소는 기각되었고, 이 사진을 찍은 사진가의 저작권은 법적인 보호를 받았다.
1985년에 자기 딸이 욕조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찍어 전시회에 출품한 스트르바의 사진은 어떤 논쟁을 불러일으켰을까? 전시회에서 이 사진을 본 어느 어머니와 아들은 충격을 받았고 곧장 경찰에 신고를 했다.(226쪽) 포르노물을 전시했다는 이유였다. 검사는 그 화랑이 평판이 좋은 곳이었고 또 이로 미루어 작품의 예술성을 보장하기에 충분하다고 간주했다. 결국 외설성은 없다는 판단이었다. 스트르바의 사진은 법에 저촉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례는 예술계가 무기력하다는 느낌을 재확인해 주었다. 즉 어떤 예술 작품이 대중에 공개될 수 있고 어떤 것은 그럴 수 없는지 허락할 수 있는 잣대가 곧 법이었기 때문이다.
2004년에는 안젤리나 졸리의 상반신 노출 사진이 문제가 되었다.(304쪽)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가 라샤펠이 찍은 사진인데, 공교롭게도 하얀 말이 코로 안젤리나 졸리의 가슴을 쓰다듬고 있는 장면이다. 이 사진은 프랑스 잡지 『포토』의 표지 사진으로 실렸는데, 스위스의 잡지 배급사는 이 이미지가 동물과의 성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고 우려한 나머지 판매하지 않기로 한 것은 물론이고 정기 독자에게도 발송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 같다는 판단하에 미리 자기 검열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포토』의 편집 주간은 이 사진이 검열의 영역을 넘어서기에 마땅한 예술성이 분명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진에 대한 판단은 이렇게 불안정하고 때와 장소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과거든 현재든 예술과 포르노그래피의 불확실한 경계는 항상 논쟁을 부른다. 이런 논쟁에서 다양한 수준의 예술적 자유가 각 시대마다 충돌하는 경계를 보여 준다.

 

권력의 이름으로 지워진 사진들
사진이 권력의 선전 수단으로 전락한 예는 많이 있다. 극적인 사진 한 장이 정치가의 웅변보다 대중들에게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권력자들은 잘 알고 있었다. 1930년대 모스크바 볼가 강변에서 찍은 사진 두 장이 있다.(96쪽) 원래는 똑같은 사진인데 한 장의 사진에는 한 사람이 지워져 있다. 니콜라이 레조프. 한때 권력의 핵심이었으나 권력에서 멀어진 후 숙청되었다. 사진에서도 그는 숙청되었다. 수정된 사진은 정치적 메시지다.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다. 공개적으로 공포를 확인시키고, 인물의 제거를 통해서 멋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려 한다. 이렇게 수정된 이미지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레조프라는 막강한 인물이 지워졌다는 강력한 본보기를.
종군 사진가 예브게니 칼데가 1945년에 찍은 소비에트 선전 사진에서도 무언가가 지워졌다.(136쪽) 무거운 깃대를 잡고 뒤뚱대는 병사를 뒤에서 받치는 장교의 양 팔목에서 번쩍이던 시계, 그 중에 오른쪽 팔목에 있던 시계가 사라졌다. 당시 소비에트 병사들의 약탈에 대한 소문이 흉흉했던 때였다. 통신사는 약탈의 흔적이 될 수 있는 이 시계를 지우기로 결정했다. 이 사례는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사진의 독해와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팔목 시계 하나가 대표하는 약탈은 수천 마디 말보다 더욱 의미심장하고 또 사진가가 겨냥한 승리의 알레고리보다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시계가 아닌 담배가 사라진 사례도 있다.(140쪽) 이번에는 세계적인 철학자 장 폴 사르트의 오른손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직간접으로 흡연을 부추기는 광고나 선전>을 금한다는 프랑스의 보건 법 때문이다. 저자는 <가령 이런 사건이 우리 사회의 금연 운동이 상당히 고조되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한다면, 이는 그뿐만 아니라 이미지의 수정과 조작을 통한 상투화가 폭넓게 이뤄지는 방식도 증명한다>고 우려를 표명한다.(143쪽)

 

포로들의 나체 사진을 공개해야 하는가?
 2004년 4월 28일, 미국 CBS 방송사는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미군 병사들에게 고문당한 이라크 수감자들을 보여 주는 사진 여섯 장을 방영했다.(300쪽)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고, 민주주의의 상징 미국은 야만의 국가로 전락했다. 이미지의 힘은 대단했다. 소문으로만 존재했던 미군의 고문 행위가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증명된 것이다. 사진에는 조작의 흔적도 없었다. 나체 상태의 수감자 앞에서 야비하게 웃고 있는 현대판 백정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 사진의 본질은 무엇일까? 물론 야만적인 미군의 고문 행위가 이 사진 덕에 만천하에 폭로되었다. 그것이 전부일까? 이 사진은 혹시 <가족과 또 전 세계인에게 보여지기 원치 않을 수감자를 억압하는 수단>이 되는 건 아닐까?(303쪽) 이 사진이 공개됨으로써 수치심도 어쩔 수 없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알 권리와 인격권의 갈등이 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사실상 여론이 영웅적 병사를 변태적 고문자로 달리 생각하게 했다면 이미지의 배포는 미국의 적대자들 사이에서 폭력을 포기하게 하든, 복수를 노리든 일종의 분위기를 조장하는 선전 역할을 수행한다. 결국 이 과정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대중 매체의 정치적 참여에 관해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 2008년 아르퀴리알 현대예술도서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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